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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소믈리에] 첫 수업, 더듬더듬 블라인드 테이스팅


2020년 1월 10일부터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전통주소믈리에 9기 과정을 시작했다. 전통주 소믈리에는 와인 소믈리에와 마찬가지로 양조장과 고객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같은 존재이다. 고객에게 음식과 상황에 맞는 술을 추천 해 주고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까지 더 해준다. 단순히 마시는 술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함께 전달하여 한 잔 술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하는 것이 소믈리에의 역할이다. 전통주 소믈리에라고 하기도 하지만 '주예사'라고 하기도 한다. 

 

나는 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고 (병원에서 일하니 오히려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하는 직장에서 일하는 셈이다.) 단순히 집에서 술을 만들다 우리 술에 관심을 가져 수업에 참가하는 취미 참가자이다. 하지만 첫 수업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류업계 또는 식품업계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다. 직접 양조장을 운영하고 계신 분도 있고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 전통주를 판매하기 위해 또는 앞으로 우리 술 관련 창업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러 오신 분들도 있다. 

 

첫 수업은 주류산업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류인수 소장님의 설명을 듣고 가볍게 몇몇 술에 대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하고 자기소개를 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최근 주류업계의 전체 매출액은 감소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는 맥주의 매출이 감소하고 있고 경기 침체로 인한 외식산업의 성장 둔화를 꼽았다. 재미난 사실은 이 와중에 우리나라 전통주 중의 하나인 지역특산주의 매출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전통주는 예로부터 양조법이 계승되온 민속주 또는 지역의 특산물 혹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료를 이용하여 만든 지역특산주를 포함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지금 우리 사회의 주류 소비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예전처럼 소주, 맥주를 부어라 마셔라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더라도 값을 더 주고 내가 좋아하는 혹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긴 술을 마시고 싶어한다. 우리 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와인, 사케 등의 매출은 감소하고 있지만 프리미엄 라인의 매출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특산주 면허를 취득하여 술을 만들면 인터넷 통신 판매도 가능하다. 2017년 7월부터 법이 개정되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네이버, 다음 등의 오픈마켓에서도 술을 살 수 있고 양조장이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술을 판매하고 있다면 그 사이트에서도 술을 구입 할 수 있다. 또한 지역특산주 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양조장에서는 다른 양조장에서 생산한 술도 소비자에게 판매 할 수 있다. 실제로 '사미인주'라는 술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는 양조장 청산녹수에서는 '술샘'이라는 전통주 전문 인터넷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 술 진흥 정책 방향에 따라 우리 술이 작게나마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Blind Tasting)

 

주예사 수업을 신청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 바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다. 소믈리에 대한 환상이 있다면 이렇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후에 정확하게 그 술의 주원료, 양조장, 양조장의 위치, 명인의 이름, 알코올 도수를 짚어내 사람들의 신뢰를 한껏 끌어올린다. 그 후에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맛깔나는 맛 설명과 함께 술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내어 결국 그 술을 사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든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위해 준비된 6개의 술

나는 표현에는 자신이 있었다. 귀에 착착 감기는 이야기와 침샘을 자극하는 형용사들로 맛을 설명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있었다.' 과거 시제이다. 일단 잔에 따른 술들을 2개씩 비교하여 평가를 했다. 1번과 2번을 비교하고 3번과 4번을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일부러 분명한 차이점이 있는 술들을 비교하기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색을 보고 향을 맡고 맛을 보았다. 그런데 하다보니 너무 혼란스러웠다. 아니면 술이 취한건가 처음에는 맛이 묵직하던 것이 몇 번 마시니까 좀 가벼운 것 같기도하고 단 것 같기도 하고 드라이 한 것 같기도 하고 마시면 마실 수록 혼란에 빠졌다. 국가대표 소믈리에까지 도전할 심산으로 야심차게 수업에 참여했는데 당최 맛에 대한 평가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1번과 2번 술의 평가 기록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면서 술에 대한 정보를 기록했다. 그리고 두 술이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을 찾는 것이 숙제였는데 나는 무감미료와 감미료의 차이를 선택했다. 정답은 1번은 밀 막걸리고 2번은 쌀 막걸리라는 것이다. 밀 막걸리는 쌀 막걸리에 비해 색이 탁하고 묵직한 맛을 낸다. 그리고 혀에 오래 머금었을 때 혀 표면에 까끌거리는 잔가루가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내가 평가한 기록을 보면 1번이 2번에 비해 향이 조금 더 묵직하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바디감은 1번이 2번에 비해 가볍다고 기록했다. 반은 맛고 반은 틀렸다고 볼 수 있지만 맛은 워낙 주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꼭 뭐가 맞고 뭐가 틀렸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마지막으로 최종 총평을 작성하는데, 소비자의 구미를 당길만한 문구를 찾기에는 내 스스로 이 술에 대한 정리가 부족했다. 그래서 총평이 비교적 간단하게 쓰였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 조금 더 연습하면 좋은 총평을 남길 수 있을거라 스스로 위로한다. 그래도 2번은 먹자마자 '아 이건 지평막걸리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2번은 지평막걸리였다. 퇴근 후에 마신 그 수많은 지평막걸리가 헛 수고로 돌아간 것 같진 않아 기분이 좋았다. 1번은 지평 밀 막걸리, 2번은 지평 쌀 막걸리.

 

최대한 상세하게 기록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음으로 3번 4번을 비교 시음했다. 소장님께서 3번 4번에는 분명한 색 차이가 존재하고 이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아마 지금 술에 조금 취하신거라고 했다. 나는 아무리 들여다 봐도 3번과 4번이 거의 비슷해 보였다. 아마 술에 조금 취했었나 보다. 일단 향을 맡았다. 3번의 향은 아직도 기억 날 만큼 인상 깊은 바닐라 향이었다. 바닐라 혹은 약간 느끼한 기름과 같이 묵직한 향이었다. 반면 4번은 보통의 막걸리 향이났다. 익숙한 곡물 향이 느껴졌다. 맛에서도 구별하기 쉬운 차이가 났다. 3번은 첫 맛이 달착지근 하면서 산미가 없고 탄산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4번은 3번에 비해 단맛이 적고 약간의 산미가 느껴지고 청량감이 있었다. 곰곰히 맛을 비교하고 내가 느낀 정보들로 비교해 봤을 때 살균 막걸리와 생 막걸리의 특징들을 3번, 4번이 가지고 있었다. 

 

살균 막걸리는 말 그대로 막걸리에 있는 균들을 없애 후발효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알코올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게되고 균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산미도 사라진다. 또한 살균을 하면 향이 묵직해 진다고 한다. 이러한 특징을 미뤄 짐작했을 때 3번이 살균 막걸리고 4번이 생 막걸리라고 생각했는데 정답이었다. 첫 출발 치고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흡족했다. 3번은 충남 당진 신평면의 신평양조장에서 생산한 백련 살균 막걸리고 4번은 같은 양조장의 백련 생 막걸리다.

 

백련 살균 막걸리
백련 살균 막걸리
백련 생막걸리
백련 생막걸리

 

5번과 6번이 흥미로웠다. 색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한쪽은 거의 물처럼 투명하고 다른 하나는 맑은 기름과 같은 색을 띈다. 잔을 빙글 빙글 돌려서 잔 표면에 흘러내리는 점도를 비교해 보면 6번이 좀 더 끈적한 느낌이다. 이로 짐작하건데 6번이 더 달 것이라고 생각했다. 쌀이 많이 들어가면 점도가 높아지고 단 맛이 난다. 향은 5번에서는 이과두주와 같은 사과 향이 났고 6번은 곡물향이 났고 향이 빠져나가는 것 없이 잔을 그득하게 채우고 있었다. 맛을 봤을 때 5번은 입안에서 사과향이 머물렀고 뒷 맛에 알코올 맛이 나면서 약간의 여운을 주었다. 6번은 5번에 비해 확실히 첫맛부터 단맛이 나면서 목을 살짝 치는 청량감이 기분 좋았다. 웬지 오랫동안 숙성시킨 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윽한 우리 술의 맛이 느껴졌다. 소곡주와 같은 맛이 느껴져서 반신 반의 하면서 소곡주라고 생각했고 5번은 무슨 술인지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두 술의 차이점이 뭔지도 짚어낼 수 없었다.

 

5번은 우리가 흔히 마시는 '청하'다. 와인잔에 마시니까 소주잔에 마시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향과 맛이 느껴졌다.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역시 와인과 비슷한 청주/약주 계열의 술은 와인잔에 맛셔야 그 술의 풍미를 더욱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6번은 2018년 우리 술 품평회에서 약주 부분 대상을 받은 '천비향'이다. 천비향은 오양주로 오랜 숙성으로 인한 그윽한 풍미와 우리 술 특유의 기분 좋은 단맛과 그 단맛을 끝에 살짝 잡아주는 산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학생은 6번 술에서 간장 냄새 같은 약간의 장향을 느낄 수 있다고 표현했는데 다시 향을 맡아보니 정말 약간의 장향이 느껴졌다. 전통 누룩을 사용하는 약주는 온도가 미지근 할 수록 장향이 난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 약주를 맛있게 먹으려면 차게 먹어야 한다.  

 

5번과 6번의 차이는 발효제의 차이이다. 5번 청주는 입국을 사용한 술이고 6번은 우리 전통 누룩을 사용한 술이다. 따라서 법적인 용어로 5번은 청주가 되는 것이고 6번은 약주가 되는 것이다. 입국과 누룩의 차이, 청주와 약주의 차이는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자. 여기서 다루기엔 내용이 길기 때문에 따로 다루는 것이 맞다고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우리 술에 이토록 빠져있냐고 물어보곤 한다. 전통주라면 안동소주 밖에 모르던 차에 우연치 않게 인터넷에서 우리 술에 얽힌 이야기들을 접하고 흥미를 느꼈고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에 호기심을 갖고 가양주 만들기 책자를 구입했다. 물론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집에서 만들어본 술은 대성공이었고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집에서 술을 만든다. 그게 3년전 일인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특이한 막걸리를 찾아 마시기 시작하고 시장에 우리 쌀로 빚은 훌륭한 술들이 하나 둘씩 소개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성장 궤도 속에 가만히 있을 수야있나. 이번 전통주 소믈리에 수업을 통해 우리 술에 대해 조금 더 깊게 배워 창업으로 이어나가고 싶다는 마음에 작은 한 발을 디딘 것이다.

 

2020년 1월에 수업을 시작한 의미로 나의 작은 목표를 기록하자면 이렇다.

더보기

1. 3개월의 교육 과정을 열심히 이수해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한다.

2. 연말에 개최되는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에서 입상한다.

3. 동시에 가을에 개최되는 가양주 선발 대회에 출전한다. 입상하면 더욱 좋고.

4. 2021년에는 이러한 타이틀을 바탕으로 막걸리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한다. (취미, 외국인 체험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