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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unknown

잘 되었으면 했더니 정말 잘 되었네


일이 잘 안될 때가 있다. 아무리 고치려해도 고쳐지지 않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잠시 쉬었다가 혹은 하루 정도 미뤘다가 하면 더 잘될걸 알면서도 마음이 급해 그러질 못한다. '이것만 하면 될꺼야 한 번만 더 해보면 될꺼야'라는 생각에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는 날이 있다.


11월 16일이 그랬다. 혈액 내의 산소 포화도를 측정하는 기계의 보드가 고장났다. 원인도 찾았고 어디서 문제인지도 찾아냈다. 이제 중요한건 정확하게 어느 소자가 안좋은지 찾아서 교체해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거의 하루를 다 썼다. 아니 일과 시간을 넘겨서도 해결하지 못했다. 평소 같으면 무리하지 않고 6시에 마무리하고 퇴근 했을 텐데 이 날은 무슨 오기가 생겨서 인지 전날 밤새서 과음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수당 없는 야근을 했다. 해도 해도 진전이 보이지 않아 적당히 마무리하고 조금은 울적한 마음을 안고 집에 도착하니 밤 9시 30분 정도가 되었었다. 


다음 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간 밤에 아무 일도 없었는데 아침 첫 공기가 괜시리 기분 좋은 날이였다. 하늘에 뜬 큰 달마저 기분 좋게 느껴졌다. 달을 찍으면서 오늘 하루 하는 일 다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다. 


기분 좋게 하루를 출발 한 탓일까, 다행히도 어제 하루를 꼬박 쓰고도 고치지 못한 장비를 이 날 오전 일과 중에 수리해서 다시 환자에게 사용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 날은 전반적으로 일이 다 잘 마무리되어서 꽤 기분 좋은 날이였다. 생각의 힘이란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잘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더니 정말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엔지니어로서 어쩌면 이런 일종의 '비과학적'인 현상들을 쫓으면 안되겠지만 가끔씩 과학만이 모든걸 해결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이 잘 안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어디선가 문득 행운이 나타난다. 지나가던 선배가 툭 던진 한 마디가 힌트가 되거나 정말 구하기 힘든 부품인데 작업실 어딘가 깊숙히 있었다거나. 이렇게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고민하고 난감해 하던 문제들이 해결이 되면 어쩌면 내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대가로 이런 행운이 찾아오는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생각의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