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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라오스에 뭐 볼게 있다고 가는거야?", "왜 하필 라오스야?" 내가 친구들과 라오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주변으로 부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왜 라오스냐고? 그러게 왜 라오스였을까. 친구들과 여행지에 대해 상의할 때, 일본은 얼마전에 가봤고 필리핀도 가봤고, 태국은 좀 식상하고 중국은 절대 가고 싶지 않고(친구들이 중국에서 일한다.).. TV에 라오스 나오던데 라오스나 가볼까? 해서 간게 라오스다. 정말 평범하지 않나요?(결론적으로 라오스는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답은 달랐다.


자,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좋은 질문이다. 아마도, 하지만 내게는 아직 대답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 라오스까지 가려는 것이니까.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여행 에세이다. 그는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보스턴, 미코노스 섬, 스페체스 섬, 로마 등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또한 여러가지 이유로 세계 곳곳을 여행했는데 그때의 느낌을 정리해서 내놓은 책이다.


여행 에세이의 재미 중 하나는 대리만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책에서 가장 큰 대리만족을 느낀 여행지는 아이슬란드다. 아이슬란드 편을 보면서 가장 많이한 말. '세상 천지에'  "아니 세상 천지에 퍼핀이 아이슬란드에 서식해? 남미가 아니고?" "아니 세상 천지에 아이슬란드에 온천이 이렇게 많아? 그냥 눈이 새하얗게 깔린 나라 라고만 생각했는데!"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을 오가는 출퇴근 길에서 퍼핀이 아이슬란드에 산다는 걸 알았다. 이래서 책을 읽어야 하나보다. 아무튼 정말 우스울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퍼핀은 아이슬란드에 서식한다는 것 그것도 600만 마리나!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억울함이 많아 보이는 퍼핀. 누가 밥이라도 훔쳐갔니



아이슬란드의 온천 블루라군. 세상천지에.. 정말 멋있다



책에는 소개되지 않는 곳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샌가 캐나다를 떠올렸다. 고작 1년을 살았지만 10년치 에피소드는 뽑았을 만큼 지금도 그리운 그 곳 캐나다. 나는 늘 새로운 여행지를 선호하지만 그 곳 만큼은 꼭 다시 한 번 찾아가고 싶다. 그런데 왜 캐나다를 떠올렸냐고? 책에서 작가는 그리스의 미코노스 섬, 스페체스 섬을 소개한다. 이 섬들은 그가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섬으로 20여년 만에 다시 방문한다. 


그 곳에서 작가는 세월이 흘렀음과 그럼에도 남아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있다. 한참이나 기억을 더듬다 결국 현지 청년의 안내를 받아 예전에 살았던 집을 찾아가고 그 곳 주인이 5년전 작고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섬 이야기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머리속에 맴돈 생각. '이런게 내가 오래전에 살던 외국을 찾았을 때의 기분일까.' '나는 다시 찾은 캐나다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기가 아마 우리가 살았던 집인가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는 그 집 앞에 섰다. 카메라멘 오키무라 씨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재방문 기념사진. 이 집인지 아닌지 100퍼센트 확신은 안 들지만, 뭐 대략 이런 분위기이긴 했으니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 책이 재미있는 또 한 가지는 문체가 갑자기 바뀌는 것이다. 아주 독특하다. 무슨 말이냐고요? 바로 이런 겁니다. Bosim님의 블로그에도 이 책에 대한 리뷰가 기록되어 있는데(http://bosim.kr/914) Bosim님이 직접 출판사에 문의한 결과 출판 과정의 오류가 아닌 작가의 의도라고 한다. 재밌지 않나요?


오후 나절에 느긋하게 이런 식사를 즐기다보면 '인생의 미스터리니 다음번 빅뱅이니 알 게 뭐냐, 그냥 내버려두면 그만이지'하는 기분이 든다. 하긴, 정말로 그냥 내버려둬도 될 일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