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김지영 - 스페인에 빠지다 / 여행은 살아보는거야

한 여행 숙박 업체 광고의 캐치 프레이즈 '여행은 살아보는거야'. 한 번도 이 업체의 서비스를 이용해 본적은 없지만 이 문구 만큼은 참 마음에 들었다. 명소만 잠깐 둘러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관광'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그런지 더욱 공감가는 문구였다.


내년에 신혼여행으로 떠나고 싶은 스페인, 프랑스 여행 관련 책을 구입하기 위해 얼마전 서점에 다녀왔다. 유명 여행 가이드 책자들이 많았지만 눈길 한 번 안주고 그대로 지나쳤다. 그런 책자에 기입된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정보는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습득 할 수 있다. 되려 실제 여행을 다녀온 블로거들의 최신 정보가 더 정확 할 때도 있다. 이 책 저 책 뒤적 뒤적 하다가 찾은 책이 바로 김지영의 '스페인에 빠지다'였다.


이 책이 내 눈길을 사로 잡았던 것은 바로 실제로 그곳에 살고 있는 작가의 경험담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천편 일률적으로 정보만 나열한 책 보다는 먼저 경험한 사람의 스토리 안에서 유용한 정보를 찾고 싶었다. 이 책에 작가는 자신이 살던 집에 관한 얘기, 스페인에서 올린 결혼식, 수 없이 다닌 스페인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 스페인 사람들, 음식, 건축, 문화, 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경험한 것을 토대로 잘 기록해 놓았다.



스페인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구입한 책인데 읽다보니 여행 자체에 대한 생각과 지금 내 삶에 대해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김지영 작가가 스페인에서 올린 작지만 주위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 행복한 결혼식, 주말 벼룩시장에서 좋은 물건을 찾는 재미, 스페인 사람들의 실용적인 삶,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식사, 낯선 이들과 함께 즐기는 여유로운 여행까지 이 책의 수록된 내용을 읽으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내 삶을 비춰보았다.


특히 재미나게 읽었던 부분은 책 초반에 나오는 작가의 마요르카 휴가 기록이다. 2주간 리얼 유러피언 휴가, 즉 딱히 정해진 일정 없이, 시간에 쫓기는 것 없이 여유로운 휴가를 즐긴 이야기다.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서 브런치를 먹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어느 바다에 갈지 정하고 그곳에 가서 각자의 여유로움을 즐긴다. 남의 시선에 구애 받지 않고 누워 책을 읽던지, 헤엄을 치던지, 낮잠을 자던지 말이다.


이 부분은 내가 캐나다에 살 때 같이 지낸 스페인 룸메이트 Oscar를 생각나게 했다. Oscar와 야외 수영장을 간적이 있었는데 나와 Oscar의 휴일을 보내는 모습은 사뭇 달랐다. Oscar는 몇 차례 수영을 하고 비치타월을 잔디 밭에 깔더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어느 정도 읽더니 엎드려 누워 선탠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나게 물장구를 치던 나는 이내 지쳐 그의 옆에 앉아 멀뚱 멀뚱 하늘만 바라봤다. 지루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수영은 이제 지치고 가만히 앉아있으니 좀이 쑤셨다. 얼마 뒤 Oscar가 이만 가자고 했을 때 꼬리가 있었다면 연신 흔들고 싶던 기분이었다.


여유로운 여행의 참 맛은 이번 라오스 여행을 통해 깨닿게 되었고 작가의 생각에 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떠난 라오스 여행 동안 유명 관광지는 '블루라군'을 빼고는 한 곳도 방문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 스타일에 맞게 아침부터 맥주병을 들고 맛있은 음식을 먹고 해먹에 누워 이런 저런 농담을 주고 받으며 킬킬 거렸다. 일정에 쫓겨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없이 자고 싶은 만큼 잤다. 먹고 싶은 만큼 먹었고 쉬고 싶은 만큼 쉬었다. 친구들과 연신 되뇌었던 말은 '아 진짜 휴가구나'. 앞으로 어디를 여행 하던지 일정에 쫓겨 버스를 타고 포인트만 찍는 관광은 하지 않을 것이라 다시 한번 다짐했다.



터지고 뭉개진 토마토가 강한 햇살 아래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얼굴과 목, 등으로 마구 들이친다. 막무가내로 옷을 잡아 찢던 남자들 .... 눈물범벅, 땀범벅, 토마토 범벅이 된 채 출구를 찾아 빠져나왔다. 아니, 인파에 떠밀리고 떠밀려 나온게 정확한 표현이다. 골목 구석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토마토 범벅이 된 채 한쪽 어깨가 찢어진 티셔츠를 부여잡고 훌쩍거렸던 모습이 그토록 기대했던 축제 끝의 몰골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페인의 점심 시간에 적용되는 메뉴인 델디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오늘의 요리'나 '런치 세트' 정도이다. 저녁이면 서너 배의 돈을 내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 점심 시간에는 세트 가격으로 제공된다.


새롭고 낯선 환경으로 나를 몰아넣으며 낯선 곳으로의 모험을 즐겼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음식을 먹고 영어를 쓰며 집 떠나 겪어야 하는 조금의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것이 내가 추구하던 여행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