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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길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 / 산중에서 배우는 인생 이야기

모처럼 만에 아무 약속도 없던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 바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나마 잠시 일상을 잊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줄 만한 책을 찾아 서점에 들렀다. '누군가의 수필이면 더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우연히 집어들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16년 동안 산중 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 자연을 통해 느낀점을 짤막한 문장으로 전하고 있다. 긴 문장대신 짧은 호흡으로 삶에 대해 논하는 것이 되려 여운 깊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삶의 자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 문장이 결코 고리타분 하거나 허세를 부리고 있지 않다. 산중 생활을 하며 사람, 자연, 불교적 이념에서 깨달은 삶의 지혜들을 담백한 문장으로 전달하고 있다. 짧은 문장들로 날 깊은 생각으로 빠트렸뎐 몇 가지 글귀들이 있다.


"적은 것이 귀하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말이나 글도 귀해야 한다. 너무 많이 토하면 천해진다."


"내가 안다는 것을 압축기에 넣고 스위치를 돌려 가동시킨다면 그 분량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내가 봐도 부끄러울 정도로 소량일 것이다. .... 그런데도 나는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경거망동하지는 않았는지 지금 이 순간 오싹해진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것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더욱더 침묵하고 겸손해져야 할 것 같다."


"향나무는 자신을 쪼갠 도끼날에 향내를 묻힌다. 아무리 증오하고 싶더라도 상대에게 침 뱉듯 말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비판을 하더라도 그 비판의 정당한 날에 향내가 묻어 있어야 한다."

많은 글귀 중에 특히 저 세가지를 읽고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고 나와 생각이 안맞으면 때론 날카로운 비판 혹은 비난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가 한 말들로 인해서 내 스스로를 천하게 만든건 아닌지 내가 어떠한 것에 대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안다고 해서 떠벌리고 다닌 것은 아닌지... 뒤돌아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없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던 찰나에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정말 내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친다면 덜 부끄러울까? 이 부끄럽고 숨고 싶은 감정들이 정말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서 느껴지는 것일까? 지금 혼자 방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저 세가지 글귀들을 보면 작가의 표현 따라 오싹해진다. 


결국 날 부끄럽게 만드는건 내 자신인 것이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내 자신 내면의 눈은 죽을 때 까지 날 바라보고 있다. 그 눈은 내가 무엇을 하던지 날 보고있다. 그치만 그 내면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나의 말과 행동 나아가 생각 하나하나를 쳐다보고 있는 저 눈을 진중하게 바라 볼 때 그 안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그때 부끄러움, 창피함을 느끼게 되고 반성하려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말과 행동이 천한건지 귀한건지 뭔지 분간 못하고 경거망동 하게 된다. 그런 사람을 '염치 없는 사람'이라 하지 않나 싶다. 결국 '염치'란 지난 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창피함을 알고 조금 더 신중해지려는 마음이 아닐까.


겸손하고 염치있는 사람이 되야겠다. 


"적은 것은 귀하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말이나 글도 귀해야 한다. 너무 많이 토하면 천해진다."


"묵언과 침묵은 다르다. 묵언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침묵은 상황에 따라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 보면 씨앗처럼 미약한 존재가 없다. 햇볓과 바람과 비와 사람의 수고가 없으면 발아되지 않는 것이 씨앗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의존이 없으면 공생공존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새삼 나 잘남을 내려놓는 연기緣起를 절감한다."